솔고개로 이동 후 홀로 산행을 이어갑니다.
요 구간은 정말 눈이 호강한 시간입니다.
이렇게 멋지게 삼각산을 조망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축복입니다.
등로도 초반 노고산 오름이 그렇지 나머진 좋고 특히 후반부는 걍 고속도로입니다.






솔고개 버스정류장
버스에서 내려 아래로 내려섭니다.

부대 정문을 지나 그린교회 안내판에서 좌틀



마을길을 따라서 계속 고고~~

강쥐도 이쁘고

친절하게도 안내판을 두개씩이나...

길에서 본격적으로 등로로 들어섭니다.

군부대때문에 우회해서 좀 오릅니다.
요기부터 한동안 철조망과 친구되어~

315봉 정상 삼각점



후문을 지나고

우회안내판이 있습니다.
직진해도 되지만 우회길은 걍 옆이라~~

능선에서 좌측




서서히 삼각산이 보이네요.

임도 위로

한참 올라갑니다.


두분이 사이좋게 오르시고


부대 정문에서 좌측으로

헬기장
노고산은 부대가 차지하고 있어 몬 가고 대신 헬기장에 정상석을 세웠네요.

노고산 정상 안내석
자리가 정말 명당입니다....ㅋㅋㅋ
삼각산이 걍 다~~
원효봉, 염초봉, 백운대, 노적봉, 만경대~~~
여기서 잠깐~~
삼각산은 지금의 북한산이다.
삼각산이란 이름은 고려 성종 때인 993년 고려사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 당시만 해도 부아악이란 명칭이 같이 사용되었으나 고려 정종 때부터는 부아악이라는
이름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삼각산으로 통일된다.
이 명칭은 조선시대에도 이어져 조선왕조실록, 동국여지승람 등 각종 고문헌에
삼각산이라는 이름으로 수없이 기록되어있다.
즉 삼각산은 천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간직한 이름이다.
삼각산이 삼각산이라 불리게 것은 삼각산의 정상을 이루는 세 봉우리에서 유래하였다.
세 봉우리는 백운봉, 만경봉, 인수봉을 뜻하며, 봉우리 하나 하나가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진 웅장한 형상으로 인간이 감히 범접하기 쉽지 않은 경외심을 불러 일으킨다.

1. 백운봉(白雲峯) (1)
가, 문헌
■ 북한지(北漢誌)의 산계(山溪)편
인수봉 서쪽에 있다. 일명 백운대라고도 한다. 곧 이 산중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나. 내용
■ 백운봉은 북한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당시에는 백운봉 또는 백운대로 불렸으나 현재는 백운대로 불린다.
■ 백운대는 행정상으로는 경기도 고양시에 속하며 하루재에서 만경대를 거쳐 대남문 방향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상에서 살짝 벗어난 지점에 위치한다.
■ 사방이 깎아지른 암벽으로 이루어진 봉우리로 조선시대에는 만경대 또는 노적봉보다도 더 올라가기 어려웠던
봉우리이다.
백운대로 오르는 길은 가장 일반적인 위문길을 비롯 호랑이굴길, 여우굴길, 원효능선에서 오르는 길 등 모두
네 가지가 있다. 위문길은 쇠난간 등 안전시설이 있어 겨울철에도 올라갈 수 있으나 나머지 길 들은 동절기에
는 위험하다. 특히 원효능선길은 위험한 리지구간으로 반드시 안전장비를 갖추고 경험자의 동행이 필요한
길이다. 위문에서 올라가는 쇠난간은 최초 일제시대에 설치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2. 인수봉(仁壽峯) (2)
가. 문헌
■ 북한지(北漢誌)의 산계(山溪)편
인수봉의 삼각산의 첫 번째 봉우리이다. 사면이 순수한 암석으로 되어 깎아 세운 듯 서 있는데,
한 봉우리가 이 봉우리 동쪽에 혹처럼 붙어 있으므로 또한 부아악(負兒嶽)이라고도 이름하였다.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 비류와 온조가 고구려에서 남행하여 한산(漢山, 지금의 서울)에 이른 후
부아악에 올라가 살 만한 땅을 살펴 보았는데, 그 산봉이 곧 이 봉우리이다.
나. 내용
■ 북한지에서는 삼각산의 세 개의 봉우리 중 인수봉을 가장 으뜸 되는 봉우리로 생각하는 듯하다.
문구의 내용으로 보아 현재의 인수봉이 분명하며 동쪽에 혹처럼 붙은 봉우리는 귀바위를 뜻한다.
다만, 온조와 비류가 과연 험준한 인수봉을 올랐을까 하는 데는 이론의 소지가 있으며,
이는 부아악이란 명칭을 북한산이 아니라 인수봉으로 좁게 해석하는데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 인수봉은 암벽등반지로 유명한 봉우리이다. 안전 장비 없이는 사실상 올라가기 불가능한 봉우리로
최대 200m 정도의 대암벽이 있는 등 봉우리 전체가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이다.

3. 만경봉(萬景峯) (3)
가. 문헌
■ 북한지(北漢誌)의 산계(山溪)편
백운봉 남쪽에 있다. 높고 빼어나고 기이하고 웅장함이 인수봉과 자웅을 겨룰 만하다.
■ 申耆의 書啓
만경봉과 백운봉 사이에 또 암문이 있습니다.
■ 신경준의 삼각산기(三角山記)
삼각산은 다 석봉이다. 그 상봉을 백운대라 하며, 그 옆에 국망봉과 인수봉이 있다. 세봉우리가 깎아 세운 듯
하늘로 치솟아 있으므로 삼각산이라 이름 붙여졌다.
■ 동국여지비고의 삼각산기
백운봉과 만경봉 일명 국망봉과 인수봉의 세 봉우리가 있기 때문에 삼각산이라 이름하였다.
나. 해석
■ 백운대 옆의 있는 암문은 백운봉암문으로 현재의 위문을 가리키며, 바로 옆에 만경대가 있다.
따라서 위문을 중심으로 백운대 남쪽에 위치한 봉우리는 만경대를 의미하며,
과거 만경봉 또는 국망봉으로 불리었으나 지금은 만경대로 불린다.
■ 만경(萬景)의 이름에 담고 있는 뜻과 같이 만경봉이란 전망이 좋은 봉우리로
국망봉이란 이름과 일맥상통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백제시대 온조, 고려 말 무학대사가 도읍을 정하기 위해 올랐다는 봉우리가 만경봉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 만경대에서 용암문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위험한 암릉 구간으로 상당히 위험하여 안전장비가 필요하나,
위문에서 정상까지는 걸어서 올라갈 수 있는 편안한 길이다.
따라서 장비가 없던 옛날에는 만경대가 백운대보다 상대적으로 올라가기 쉬운 길이다
1395년 12월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새로 지은 경복궁에 들게 되니 개국공신 정도전(鄭道傳)은
새 도읍의 만년태평을 기원하는 가사를 지었다.
그 내용을 담은 '악장가사'에 북한산을 일러 '삼각산'(三角山)'이라 쓰고 있다.
또 고려조 성종 12년(993년) 서희가 성종에게 아뢰기를 "삼각산 이북도 또한 고구려 땅입니다"하였고,
그 뒤 고려사에 20여회나 삼각산이 등장하면서 각종 문헌과 비석 등에도 삼각산으로 굳어져 세종실록지리지,
대동여지 그리고 조선왕조실록 등에도 한결같이 '삼각산'이 북한산의 본 이름으로 사용되어 왔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가면서 남긴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시에도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 떠나려.'라며 '삼각산'이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주객이 전도되어 '북한산'이 산의 본명처럼 행세하고 있지만 '북한산'은
산이름이라기 보다는 백제 건국 이후 한강 이북지역을 뜻하는 이름, 또는 고을 이름이었던 것이다.
백제, 고구려, 신라가 서로 국경을 맞대고 으르렁 대며 영토확장에 혈안이 되었을 당시에는
개차산, 열야산, 진악산, 삼년산, 마시산 등 '산'이 붙은 이른바 고을 이름이 많이 나온다.
여기서 '산'은 고구려계 땅이름이 달(達), 홀(忽), 골(骨) 등과 함께 고(高) 또는
성읍(城邑)을 뜻하는 땅이름의 접미어로 쓰였던 것이다.
이 밖에도 여러 문헌을 눈여겨보면 산을 이야기할 때는 '삼각산'이라 하였고
한성부의 옛 고을명칭을 이야기할 때는 '북한산'이란 이름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삼각산 이름에 대하여 풀이하기를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의 세 봉우리가 솟아있으므로 삼각산이라 부른다
"고 풀이하고 있으나 이는 말도 안되는 소리. 북한산이 어찌 이 세 봉우리뿐이랴.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과 맞먹는 노적봉, 보현봉, 문수봉 등 여러 봉우리들을
제외하고서 어찌 세 봉우리만 가지고서 논할 것인가.
이것은 뒷날 사람이 '삼각'(三角)이란 한자풀이에 너무 얽매어 부회한 결과일 뿐이다.
여기서 '삼각산'이란 이름은 '서울산'을 한자로 나타낸 것 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서울'의 본딧말이 '셔불'(세불)이다.
그러니까 '삼각'(三角)의 '삼'(三)은 '세'(서)이고, '각'(角)은 '불'(뿔)로 곧 '서불→서울'이 된다.
'삼각산'이라는 이름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의 삼각산,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의 삼각산 등
여러 곳에 산이 삼각형이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 말의 '셔불', '세부리'를 한자로 뜻빌림(意譯)한 것 뿐이다.
그것은 옛날 그 지역이 부족국가의 군장(君長)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서울'(셔불, 세부리)은 그 지역의 '수부'(으뜸도시)라는 뜻이다.
특히 신라의 17관등급 가운데 첫번째 품계인 '각간'(角干)을 '셔블한'(敍弗邯)으로 쓰고 있는데,
여기서 '각=셔블'과 '간=한'의 대등관계가 이를 대변해주고 있다.
'삼각산'에서 '삼=셔(서)'와 '각=셔(서)불'에서 '셔'(서)가 다만 중복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북한산=삼각산'에서 뭇사람 사이에 사용해온 산이름은 백제의 도읍 이후 삼각산이었으며
그것은 이 산이 사람들 사이에 '서울산'의 뜻으로 통했음을 알 수 있다.
서울에 '서울산'이 있음은 온당한 일이다.
-정다운 산오름방에서 퍼옴-

상장능선과 왕관봉, 뒤로 도봉산과 오봉은 보이나...

영봉, 인수봉,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 염초봉, 원효봉

문수봉, 비봉능선

정상 군부대

파노라마도 한장~

정말 흔치않은데 셀카도 한장...ㅋㅋ

삼하리, 금바위저수지로

은평구

금바위저수지방향

헬기장을 지나고

가지가 희안하게 휜 소나무



또 헬기장


의상능선과 비봉능선

아쉬움에 한번 더...


이제 금바위저수지는 버리공 좌측 심막골쪽으로도 길이 있는데 직진으로,

마이보던 거지요...ㅋ
얼마전 다녀갔다더니만.

소나무가 참~~


사격시엔 통제하기 위해 줄이 쳐져 있습니다.

9번 송전탑

182봉 정상 삼각점

잡목도 있고요,

중고개

중고개안내판

옥녀봉으로



옥녀봉으론 몬가고 부대때문에 트랭글만 옥녀봉이라고...
우틀~

삼송역방향




무덤을 지나

349번 국도로 내려섭니다.

위 매너미고개로 올라가고

사거리에서 건너편으로 길을 건너고

마침 승용차가 들머리 입구의 안내판을 정확하게 가리고 지나가네요...ㅋ

고양 한북 누리길 안내판
요게 보입니다.




한북누길길과 군사시설 안내판

한북누리길 안내판

간간히 운동시설도 있고요.
아래 정자 전에 오송산도 있다고 트랭글엔 나오네요.

싸리나무정자도 있고

매너미고개부터 여석정까지 등로가 엄청 좋습니다.

공터에 한무리의 사람들이 있는데 북한산 전망대란 안내판이 있습니다.

북한산 전망대 안내판

역쒸~~
좋습니다.

요 무하산악회 띠지가 안내를 잘 하네요.

두번째 오동나무정자


옛길 안내판
살짝 갈림길인데 이곳으로 우틀

세번째 여석정

여석정 안내판

지축차량사업소라고 지도엔 나오는데

삼송배수지

여석정 우측으로 진행을


이곳으로 내려서서 좌측 위로

위쪽 우측 숲으로~
위 도로 좌측엔 숫돌고개 안내판도 있습니다.

숫돌고개 안내판
지도상엔 부대앞 날머리가 숫돌고개라 되 있는데 안내판은 이곳에...

집에서 우측~

이길을 올라서면


공사중인 생태통로를 지나 좌측으로

앞 무하산악회와 한국등산클럽의 띠지가 오늘은 안내자 입니다.

날머리 숫돌고개와 군부대 정문

부대이름이 독립문부대네요.

내려선 날머리 입구

다음번 들머리
부대정문 왼쪽 옆 길로~

공사가 거의 끝나가는 생태통로

삼송역까지 내려갑니다.

삼송역
암튼 걷기도 모두 끝이 났습니다.
간단하게 역 화장실에서 대충 닦고 부평 뒷풀이 식당 도착전에 문자를 달라고 했는데 아직 소식이 없어요,
부평으로 향합니다.

의주길 안내판
이곳이 시작점이네요.

고양시 관광 안내판



백석역까지 전철로 오고 다시 환승버스를 기다리며

본진이 철도길 아래 개울을 몬 건너고 돌아오느라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
덕분에 참석이 가능한가 걱정했는데 오히려 1시간을 더 혼자서 기다려야 했는데
그래도 함께 맛있는 뒷풀이를 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이제 한북은 마지막 한구간만을 남기고 있습니다.
개으름을 피우느라 한남금북을 혼자서 몬하고 있었는데 형님이 다음엔
한남금북을 하신다니 이곳에서 함께 마무릴 지어야 겠네요...ㅋㅋㅋ
참 간지대장님은 대간을 24구간으로 야심차게 진행하신다 하는데
횐님들이 많이 모이시길 기도합니다.
끝까지 고생하신 대장님과 총무님 수고하셨고 전 잔칫날 뵈야 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