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건 제가 명명했는데 흑심바위임다...ㅋ
모두 즐거운 한때를 보내시네요.
방개고개갈림길안내판
새가리고개쯤으로 보이는데,
이게 말로만 듣던 보문사에서 쳤다는 철조망인듯 합니다.
처음엔 그저 조그만 절집이었는데 이제는 철조망을 두를 정도로 던을 많이 버신건가....ㅠ
암튼 사람들은, 교회든 절집이든 참 안좋은건 잘도 배웁니다.
이곳이 지도상 낙가산 정상입니다만 암것두 없으니 그냥 통과,
일설에는 절집에서 몬 만들게 한다고 하는데 믿거나말거나....
보문사삼거리안내판
이곳에서 보문사로 하산을 합니다.
길이 좋아서 상봉산까지도 갈 수 있지만 오늘은 시간상 이곳으로....
전체적으로 등로가 좋습니다만 약간 비알도 있고 암릉도 있고 여성산우님들은 좀 거시키 합니다.
보문사의 상징에 하나인 마애불(마애석불좌상)입니다.
한 삼십년쯤 된것 같은데 친구와 둘이서 돈도 없이 무작정 바닷가에소 노숙을 하고 새벽녘에 고픈 배를 달래며 올랐다
새우깡 한봉지를 발견하고 먹다 발소리에 후다닥 바위 뒤로 숨었던 기억이 있는데....ㅋㅋ
그리고 다시 바닷가에서 콩서리까지....ㅎㅎ
그리고 석불위 바위가 눈섭바위임다.
보문사 극락보전.
대한불교조계종 직영사찰로서, 우리 나라 3대 관음영지(觀音靈地) 중의 한 곳이다. 이 절의 창건에는 다음과 같은 연기설화(緣起說話)가 전한다.
635년(선덕여왕 4) 4월, 삼산면에 살던 한 어부가 바다 속에 그물을 던졌더니 인형 비슷한 돌덩이 22개가 함께 올라왔다.
실망한 어부는 돌덩이들을 즉시 바다로 던져 버리고 다시 그물을 쳤지만 역시 건져 올린 것은 돌덩이였으므로 다시 바다에 던졌다.
그날 밤, 어부의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서 귀중한 것을 바다에 두 번씩이나 던졌다고 책망하면서,
내일 다시 돌덩이를 건지거든 명산에 잘 봉안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다음날 22개의 돌덩이를 건져 올린 어부는 노승이 일러준 대로 낙가산으로 이들을 옮겼는데,
현재의 석굴 부근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돌이 무거워져서 더 이상은 나아갈 수 없었으므로
“바로 이곳이 영장(靈場)이구나.” 하고는 굴 안에 단(壇)을 모아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 신라시대의 역사는 자세히 전하지 않으나, 고려 초기에 금강산 보덕굴(普德窟)에서 관음진신(觀音眞身)을 친견한 회정(懷正)이
이곳에 와서 불상을 살펴보니, 가운데 좌상은 석가모니불, 좌보처는 미륵보살, 우보처는 제화갈라보살이었고, 나머지는 18나한상과 송자관음이었다.
회정은 이 22존 중 삼존불과 18나한은 굴 속에 모시고 송자관음은 따로 관음전을 지어서 봉안한 다음 이 절을 낙가산 보문사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절의 역사는 사찰의 격에 비하여 자세히 전하지 않으며, 조선시대 후기부터의 역사만이 전해지고 있다.
1812년(순조 12)에는 이 절의 승려들이 홍봉장(洪鳳章)의 도움을 받아 중건하였고
1867년(고종 4)에는 경산(京山)이 석굴 안에 처마를 이어 나한전을 건조하였으며, 1893년(고종 30)에는 명성왕후의 전교로 요사와 객실을 중건하였다.
1911년 일제가 30본·말사를 제정하면서 전등사 말사가 되었다.
1918년에 대원(大圓)이 관음전을 중수하였고, 1932년에는 주지 배선주(裵善周)가 객실 7칸을 새로 지었으며, 1935년에는 나한전을 중창하였다.
그 뒤 관음전을 중건하고 대범종을 조성하였으며, 1976년 범종각과 요사를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관음전·대방(大房)·종각·석실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석실 굴 안에는 나한상이 봉안되어 있다.
이 석굴 입구에는 세 개의 홍예문을 설치하였고, 동굴 안에는 반원형 좌대를 마련하고 탱주(撐柱)를 설치하였으며,
탱주 사이에 21개 소의 감실이 있어 석불을 안치하였다.
이 밖에 이 절에는 마애석불좌상과 천인대(千人臺)가 있다.
마애석불좌상은 1928년에 금강산 표훈사(表訓寺)의 승려인 이화응(李華應)이 보문사 주지 배선주와 함께 조각한 것으로, 높이 9.2m, 폭 3.3m이다.
석불좌상의 상부에는 거대한 눈썹바위가 있고, 좌측에는 비명(碑銘)이 있으며, 불상 앞에는 소규모의 석등이 있다.
이 석불과 석굴에서 기도를 하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하여 찾는 여인의 발길이 그치지 않는다.
또 천인대는 길이 40m, 폭 5m의 큰 바위이다.
이 절의 창건 당시 서역(西域)의 고승이 이 천인대에 불상을 모시고 날아왔다는 전설이 있다.
그 뒤 이 바위는 법회 때 설법하는 장소로도 사용되었는데, 이 바위 위에 1,000명이 앉을 수 있다고 하여 천인대라고 명명하였다.
1994년 10월 대한불교조계종 직영 사찰이 되었다.
*참고로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觀音聖地)는 예로부터 양양 낙산사, 강화 보문사, 남해 보리암을 꼽아왔다.
여기에 여수 향일암을 더하여 4대 관음성지로 일컫는다.
『법화경』「관세음보살 보문품」에서는 "일심으로 부르면 즉시 해탈의 세게로 인도해줄 것이다"라고 햇다.
관음성지의 시원은 인도 남부의 말나야(Malaya)산 동쪽 구릉인 보타락가산이(補陀洛迦山)다.
「80화엄경」에 따르면 관세음보살이 머부는 곳은 "바다 위에 산이 있어 많은 성현들이 계시는데 많은 보물로서 이루어져
지극히 청정하며, 꽃과 과실수가 가득하고 샘이 못에 흘러 모든 것이 구족하다"고 한다.
중국의 현장은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서 보타락가산에서 동북쪽으로 가면
남해의 승가라국(僧伽羅國:현재의 실론, 스리랑카)으로 가는 통로가 있다고 해 관음신앙의 발상지를 인도의 남부해안으로 추정한다.
이 때문에 티베트를 비롯, 중국 일본 한국의 관음성지는 모두 바다와 접해있다.
바다가 없는 티베트는 라사를 바다로 간주하고 그 강 유역에 위치한 라사의 '포탈라궁'을 상주처로 삼고있다.
그곳에 사는 달라이라마는 관음보살의 화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중국은 중국 절강성(浙江省) '주산열도(舟山列島)'의 보타산 진제사를, 일본은 기이코쿠 보타락을 관음보살 상주처로 믿고있다.
이젠 입장료까지 내고 들어가야 하다니....ㅠ
낙가산보문사 현판의 일주문
입장료를 안냈다고 하니 일하시는 분이 호떡이나 하나 사 먹으라고 하는데 시간이....ㅋㅋ
보문사주차장
이로써 모든 산행이 끝이 났습니다.
그래도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눈이 좀 더 오징....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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