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제 41차 산행
*일 시: 2013년 11월 16일(토) 04:30~
*장 소: 유치삼거리(들머리)~매요리~고남산~여원재~수정봉~주촌리(날머리, 17.22km)
*들머리: 유치삼거리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매요리 산 24-1번지 일원.
*날머리: 주촌리 -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 57-12번지 일원.
*소요시간: 7시간 27분(후미기준: 09:39 - 산행시작 ~ 17:06 - 산행종료)
총 휴식시간 1시간 55분(점심식사 약 40분, 휴식시간 약 1시간 15분)
*도상거리: 17.22km (시간당 약 2.3 km/h)
*총거리: 734.65km 중 -**- 641.07km 종주.
*날 씨: 하루종일 엄청 맑고 좋음, 구름은 좀 있으나 바람 간간히 불고
완전 봄 날씨, 조망 좋음.
*참석인원: 총 25명.
-운 영 진: 오키짱님, 무주상님, 용아님.
-최우수회원: 꽁지각시님, 풍산님, 오이님, 둥그라미님, 노찌님.
-우 수 회 원: 옴파로스님, 황악산님, 산들바람님, 부르토님, 택군님.
-정 회 원: 피아님, 고야님, 카우보이님, 대나무님, 이네아빠님, 현술이님.
-준 회 원: 진솔이+1(남재현)님.
-특 별 회원: 코옹쥐님, 하랑님, 푸른소금님, 진솔이님, 변사또.
-불 참 회원: .
*산행지도, 고도표:
*시간대별 산행기록:
05:20 - 선학역 출발
07:34 - 인삼랜드휴게소 도착(아침매식)
09:39 - 유치삼거리(들머리) 도착
09:49 - 매요 마을회관 도착 (10)
09:59 - 산행시작
10:41 - 십자로 안부(옛고개?) 도착
10:58 - 704봉 도착
11:06 - 임도 도착
11:14 - 고남산 기지국 도착 (20)
11:38 - 헬기장 도착
11:41 - 고남산 도착 (15)
12:00 - 암릉 로프 도착
13:05 - 이정표(여원재 0.4km, 고남산 5km) 도착
13:23 - 이정표(여원재 0.2km, 고남산 5.2km) 도착
13:30 - 여원재 도착
13:34 - 점심식사
13:43 - 진솔이+1님 알바 복귀^^&
14:00 - 풍산님 알바 복귀^^*
14:12- 오후 산행 시작
14:17 - 이정표(수정봉 4.2km) 도착
14:29 - 이정표(수정봉 3.5km) 도착
14:29 주지사갈림길 이정표 도착
14:32 - 이정표(수정봉 3.4km) 도착
14:42 - 이정표(수정봉 2.7km) 도착
14:52 - 700봉 도착
15:07 - 입망치 도착
15:31 - 수정봉 도착 (25)
16:08 - 이정표(노치마을 1.5km) 도착
16:19 - 이정표(노치마을 0.8km) 도착
16:27 - 이정표(노치마을 0.42km) 도착
16:34 - 당산나무 도착
16:39 - 노치샘 도착
16:42 - 대간 기념석 도착 (5)
17:06- 노치마을 안내석(날머리) 도착
*산행후기글*
오랜만에 노상 뒷풀이를 준비하려니 짐이 참 많습니다.^^
집을 나서는 이른 새벽 자욱한 안개가 엄청 심해서 앞을 분간하기가 쉽지 않은데,
새벽 안개가 심하면 날이 맑다는 소릴 들은 적이 있는데 즐거운 마음으로 소풍으로 출발합니다.
늘 그렇지만 김승진기사님 참 부지런 하십니다. 새벽 4시를 좀 넘겨서 벌써 나와 기다리고
계시니 먼저 짐을 풀고 다른 회원님들을 기다리다,
저는 주차를 위해서 송내역으로 이동하고, 기다리고 계시는 버스 승차지로 이동을 합니다.
횐님들을 모두 태우고 버스는 안개가 심한 고속도로를 달려갑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산들바람형님이 차안이 덥다면서 앞 좌석으로 왔다갔다 정신없습니당...ㅎ
중간에 새벽매식을 위해 휴게소에 잠시 들린것 빼고는 잘 왔는데 조금 빨리 가려고 길을
들어선 것이 옛 마을길로 들어와 조금 힘들게 들머리인 유치삼거리에 당도합니다.
유치삼거리.
오늘에 들머리입니다.
사실 유치삼거리는 이곳에서 조금 더 위쪽에 있습니다.
3차 산행시에 매요리에서 시작하기로 했었는데 버스가 들어가기 힘들다고해서 이곳에서
시작을 했기에 오늘도 이곳에서 산행을 준비하고 본격적인 들머리 매요리마을회관으로
이동을 하는데 한참 가을걷이가 한창인 짠지무 수확에 입구는 온통 무밭입니다.
마을 입구에는 가는 가을을 못내 아쉬워하는 단풍나무 한그루에 회원님들이 한껏 가을을
느끼며 힘찬 출발을 합니다.
오늘 산행은 힘들것이 별로 없습니다.
고도차도 그리 크지않고 무거운 점심도 차량에 두고 산책하듯 산행을 즐기는 것이라
회원님들도 모두 편안한 얼굴이고 보니 저절로 신이 납니다.
또 출발할때 심했던 안개는 거의 그치고 파란 하늘이 나타나는데 날씨도 따뜻하고 완전
봄날씨 입니다. 산책하기엔 이보다 좋을 수 없습니다....ㅋ
매요리 마을을 통과해 처음 등로로 접어 들고는 조금 비알을 올라갑니다.
처음에 껴입은 옷들을 벗고 편안한 복장으로 다시 산행을 합니다.
이번 산행로는 특별히 난코스가 없어서 그리 크게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만큼 제 마음도 편안하다는 것이지요, 암튼 고남산 입구까지 계속되는 비알입니다.
그러나 오름이 완만한 정도여서 산행엔 조금 땀이 날뿐 빠르게 진행을 합니다.
고남산 정상 안테나 유지용 도로에 들어서면서 경사가 심해지지만 잠시입니다.
곧 정상부근에 안테나가 높게 모습을 들어내고 속속 회원님들이 오시니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정상으로 올라갑니다.
고남산(古南山).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과 산동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846.5m이며 가재-수정봉-고남산-
여원치로 통하는 백두대간의 맥상에 놓여 있다. 특히 운봉의 북서쪽을 지키는 산으로 운봉분지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요천이 흘러내리는 산동과 남원 쪽을 모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이 좋은 산이다. 위치상 옛날부터 전쟁의 요충지가 되었다. 고려 말인 1380년(우왕 6)에 인월면
인월리에 본진을 둔 왜장 아지발도에 맞선 이성계가 천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이곳에 당도하여
제단을 쌓고 서쪽 기슭에 있는 창덕암 약수터에서 목욕재개하고 산신제를 올리고 황산(荒山)에서
대승을 거두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고남산의 유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주민들에 의하면 고남산을 태조봉 또는 제왕봉이라고도 부른다.
태조 이성계가 고려 말 왜구를 무찌를 때 이곳에 제단을 쌓아 제를 올렸기 때문이다(왕이되었으니^^).
주변에 이성계와 관련한 지명이 전해지는데 여원치에서 고남산 초입에 있는 마을은 이성계를 수행하던
무학대사가 지세를 보고 고남산의 산줄기가 이 마을 까지 뻗어 내린 모습이 마치 긴 다리를 이어 놓은
것 같다하여 장교리(長橋里)라 지었다. 또한 고남산 아래에서 산신제를 올릴 때 주둔하던 군사와 말들의
식수로 썼던 샘터 주변에 터를 잡은 권씨 일가의 권세가 크다 하여 권포리(權布里)라 하였다.
백두대간 주맥의 분수계로 고남산의 물줄기는 동쪽으로는 운봉천과 남천을 지나 경호강을 통해서
낙동강으로 유입되지만 북서쪽의 산동면으로는 요천을 통해서 섬진강으로 합류된다.
약 1시간을 조금 넘겨서 도착한 고남산은 정말 화창합니다.
푸른하늘엔 구름 한점 없고 바람도 조용하고 날도 따뜻하니 최상입니다만, 멀리 지리산을
감싸도는 하늘엔 약간 구름정도, 전형적인 가을 날씨를 모두 즐기고 좋아하시네요.
하지만 에고, 제 마음엔 또 지나간 40차 생각이 간절합니다....ㅠㅠ
"점봉산."
'너도 이러했으면'....ㅋ
아쉬워한들 소용이 있겠습니까만은 암튼~~~~.
산불감시초엔 도로에서 함께 올라오신 아저씨 한분이 계신데 처음엔 산에 오셨나 했는데
감시원입니다. 다행이도 단속을 하시진 않아서 다행입니다.
한쪽에선 고야형님이 브리핑을 하고 계신데,
음,
"저 산능선 넘어가 천왕봉이고 저쪽 봉우리가 바래봉, 글구 이쪽 봉우리가 만복대 그 조금
아래가 정령치, 여기서는 정령치는 안보이네"....
한참을 형님이 하시는 말씀에 귀 기울이는데 첨엔 봐도 그런가 싶습니다만, 조금 들으니
그런것도 같습니다....ㅋㅋㅋ
새삼 형님에 기억력과 정보에 또 감살드리고, 아쉬운 마음은 접고 다시 산행을 이어갑니다.
여원재 입구 장동마을까지는 편안한 숲길입니다만 이곳은 정말 소나무가 많습니다.
산행내내 느껴지는 소나무향이 얼마나 좋은지 그 기분은 최상입니다.
중간에 무자게 위험한^^ 암릉에서 로프를 살짝 타고 내려오는 것과 마을과 인접해 있어서
무덤이 많다는 것 외에는 오직 소나무 숲입니다.
대간길이라 안 가보신 횐님들이시라면 적극 추천합니다....ㅎ
이네아빠형님이 가던 길중 화들짝 놀라 피하시는데 뭔가 했더니 개굴님입니다.
크기도 제법 큰것이 때도 때인데 지금 시간이면 벌써 땅속에 있어야 하는거 아닌지 심히 걱정이
되지만 어떻게 해줄 것도 없고 걱정만 하며 지나칩니다.
이쯤해서 용아형님은 여원재에 당도했다고 전화가 오고, 참 형님은 다른 구간을 더 산행해야
해서 다른 팀들과 산행을 끝내고 여원재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가 여원재에 다와서 발생합니다.
등로에 밭이나 도로가 생기면서 등로를 찾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이후에 회원님들은 마을길로 접어들면 우측 하산길이 아니라 그 길에서 좌측으로 마을로 들어서
띠지를 확인하며 내려오시면 입구로 다시 만나게 됩니다.)
나중에 보니 마을을 경유해서 내려오는 것이 일반적인것 같은데 아무튼 여기서 약간의
알바?를 하고 무사히 여원재에 당도합니다.
여원재.
여원재의 유래.남원에서 24번 국도를 타고 운봉읍으로 가다보면 여원치(여원재, 여재)를 넘는다.
해발 470m의 여원치는 그 이름의 유래가 두가지로 전해지는데, 교통이 불편하던 옛날 남원과 운봉,
함양을 오가는 길손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했던 이 고개의 유래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왜구는 호남 곡창지대를 침범한 후에 전주, 공주를 거쳐 서울까지 진격할 계획하에 고려 우왕(愚王)
6년(1380)에 부산, 진주, 함양을 거쳐 남원군 인월면 일대를 점령 상군리, 중군리, 하군리에 주둔하고
있었다. 이때 왜구의 부장에는 당시 나이 15세에 불과한 아지발도(阿只拔都)가 선봉장이 되어 닥치는
곳마다 살인, 방화, 약탈, 파괴등 갖가지 만행을 저지르며 이땅을 짓밟고 북상하고 있었다.
이에 이성계 장군과 변안열, 퉁두란등이 왕명을 받고 전주, 남원을 거쳐 운봉을 향해 진군하던 중
아흔아홉 구비의 험준한 고개를 넘어야 했다. 부대가 고개 정상에 이르렀을 무렵 갑자기 안개가
자욱하여 시야를 가리더니 비몽사몽간에 노파(비문에는 도고(道姑)라 되어 있다.) 한 분이 장군앞에
나타나 왜구와 싸울 시기와 장소 방법을 일러 주었다. 그 노파는 당시 경남 함양의 미모 단정한
주부였는데 왜장 아지발도가 그녀를 희롱하며 젖가슴에 손을 대니 칼로 자기 젖가슴을 도려내고 자결한
원신(怨神)으로서 노파로 변신하여 이성계장군께 전략을 일어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여원재
여신상은 왼쪽 젖가슴이 없으며 그 노파가 지적하여 준 결전의 장이 곧 운봉 황산(荒山)이었다고 한다.
또는 고려말 왜구가 침입하여 함양을 유린하고 남원성을 향하던 중 여원재 주막에서 술을 진탕 마시다
주모를 위협하여 희롱하였는데 이런 수모를 당하고 난 주모는 비분하여 부엌칼로 자신의 젖가슴을
도려내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 후 이런 주모의 소문이 퍼져 이곳 주민들이 주모의 절개를 높이
기리기 위하여 그 자리에 비석을 세우고 그녀의 제각을 지었다고 한다. 당시 여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 여인의 몸에서 물이 흘러 그 아래 마을 밭에서 자라는 풀이 쪽빛으로 변하였다고 하여 지금도
그 곳 지명이 남평리(藍坪里)로 되어 있다. 그 사연이 있은 뒤부터 고개 이름에 여(女)자를 붙여
여원재(여원치,女院峙)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또한 여인의 원혼이 산신 할머니로 변하여 왜구
토벌을 위해 병막동에 잠시 주둔하던 이성계장군의 꿈에 나타나 전승을 계시하였다고도 한다.
장군은 노파의 전략에 따라 황산에서 왜구를 물리쳤다고 한다. 그래서 이성계 장군은 정성을 다해
노파를 만났던 여원재 석벽에다 왼쪽 젖가슴이 잘린 여상을 새기고 그 위에 집을 지어 여상을 영구히
보존하고자 산신각을 지었다고 한다. 현지 주민들은 이 여원치를 연재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필시
여원의 이름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짐작된다. 이렇듯 이 고개의 이름과 역사는 상당히 오래됐으며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남원에서 운봉을 향하다 여원치 정상 바로 못 미처 한 굽이 휘돌다
우측의 옛도로 수풀 사이에 발을 디디면 남원분지의 너른 들판과 지리산 시루봉을 비롯해 서쪽으로
장쾌하게 펼쳐진 산군들을 만나 볼 수 있다. 여원재에서 바라보는 일몰, 즉 여원낙조는
운봉팔경중 하나로 손꼽힐 만큼 아름답다. 등산동호인이나 문화유산 답사 애호가들은 지리산
연봉을 한눈에 감상하기 좋은 곳으로 이곳 여원재를 대답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고갯마루를 지키고 있는 운봉(운성)대장군 석물상을 지나치면 들목 끝에 지리산 산줄기에서 뻗어나온
부운치와 팔랑치, 바래봉의 장엄한 능선이 펼쳐진다. 바래봉은 봄철 철쭉 군락지로도 유명하다.
한편 운봉읍은 목기로도 잘 알려진 곳이다. 24번 국도 주변에는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여러개의
목기공장과 전시장이 길손의 눈길을 끈다. 운봉이라는 고장은 목기 외에도 동편제라는 소리가
자랑인 곳이기도 하다. 인월로 향하는 비전 마을에는 송흥록에서 송만갑, 근대에 와서는 명창
박초월로 이어지는 동편제를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곤 한다.
여원재 고개의 사연과 풍경을 감상한 후 지리산 단풍 비경을 만나려면 운봉읍 주촌리에서 시작
정령치를 넘는 산록도로를 찾아가 보도록 한다. 정령치 고개를 넘어 만복대와 반야봉 사이
지리산 관통도로 삼거리에 이르면 북동쪽으로 실상사, 남서쪽으로 노고단 성삼재와 시암재를
거쳐 천은사로 가게 된다.
동학군이 넘지 못한 여원재
남원과 운봉, 더 나아가 영남과 호남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고개인 여원재(470m)는 전략적으로도
가치가 있어 임진왜란이나 왜구의 침입같은 전쟁이나 민란, 반란등이 있을 때마다 항상 쟁탈의
대상이 되곤 하였다. 그것은 1894년 1월 반봉건, 반외세를 외치며 일어서서 세력을 키워 나가던
동학군에게도 마찬 가지였다. 당시 동학군의 주요 전투지는 백두대간 서쪽의 호남지방과 충청
일부지역 이었다. 하지만 전주 화약을 맺은 뒤에도 외국 군대가 철수하지 않고 청나라 대신 일본이
침략 전쟁을 강화하자 동학군은 병사를 몰아 서울로 들어 가서 권귀를 처단하고 외적을 몰아내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편하게 하자라는 구호 아래 다시 모여 들기 시작했다.
한편 동학군이 백두대간 동쪽의 영남지방으로 진격을 시도하기 위해 노렸던 곳이 바로 여원재.
특히 이 고개 너머의 운봉은 삼남을 호령할 수 있는 요지라고 생각한 남원 동학 접주 김개남은
일찍부터 이곳을 손에 넣으려고 고심했다. 당시 김개남은 남원성을 점령하고 교룡산성에 들어가
군세를 크게 떨치고 있었다. 이때 운봉군수 이의경은 불안을 느껴 세력있는 지방의 호족들과
단결해 장정들을 모집하고 군사훈련을 시켰다. 이의경에게는 눈이 하나밖에 없는 일목장군이라
불리는 운봉사람 박문달이 있었다. 김개남은 사기 충천한 동학군 1만명을 이끌고 여원재로
진격하였지만 동학군의 움직임을 꿰뚫고 있던 박문달은 5천여명의 병사를 산마루에 숨겨 놓았다가
동학군을 기습공격 하였다. 동학군은 여원재에서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많은 희생자를 낸 채
남원으로 물러 섰다. 결국 동학군은 이 여원재 전투에서 패하는 바람에 영남지방으로는 한발짝도
들여 놓지 목했던 것이다.
판소리의 고향 운봉
판소리 동편제 발생지인 운봉에는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 하나인 흥보가의 배경이 된 마을도 있어
판소리의 고향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 지역에 음악의 싹이 튼 것은 오래 전 일로 통일 신라 때
옥보고는 거문고를 가지고 운봉에서 제자를 가르쳤는데 바래봉 북쪽의 옥계동 계곡이 옥보고와 관련
있다고 한다. 동편제 창시자인 송홍록은 조선 말기 운봉 화수리 비전 마을에서 태어 났다.
판소리를 본격적인 창으로 생성시킨 대가들은 모두 송홍록에게 전수받은 제자들이었다.
즉 송홍록의 수제자인 김성옥의 아들 김정근에 의해 중고제가, 주덕기의 아들 상환과 순창 사람
박유전에 의한 서편제가 갈려져 나갔다. 이 때문에 송홍록은 판소리의 중시조로 추앙받고 있다.
송홍록의 종손으로 송광록, 송우룡등 쟁쟁한 명문가 출신인 대천재 송만갑도 운봉 화수리 비전
마을에서 태어나 일곱살에 소리에 입문했다.
판소리 200년사에 가장 많은 제자를 가진 송만갑의 가풍은 요즘 판소리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또 고종의 생일 잔치에 전라도 광대 대표로 임금 앞에서 노래를 불러 절찬받은 장재백과 가야금의
천재인 장행진도 운봉 출신이었고 수궁가 무형문화재 제 5호 박초월은 고향은 아영면 청계리이지만
어릴적에 송홍록과 송만갑의 고향인 화수리 비전 마을로 이사가서 소리를 익혔다
*남원십경*
1).구룡계곡
이 계곡은 지리연맥이 남서로 뻗어 내려와 대협곡을 타고 용호의 구곡경을 이룬 절경이다. 각
구비마다 청산녹수는 산심의 정취를 깃들이게 하며 석강수의 맑은 여울은 산청의 교향악처럼 세속을
잊게 하는 승지가 되고 있다. 일곡(一曲)에서 구곡(九曲)까지는 산세따라 층암절벽에 옛 시인
묵객들의 풍류를 담은 전설과 자취가 남아있어 그 시대의 태평연월을 연상케 하고 있다. 또한,
철따라 바뀌는 풍경은 관광의 극치를 이루며 정상인 코재에 오르면 구곡경의 구룡폭포가 있다.
이 구룡폭포 아래에는 천년수림 속에 절벽으로 둘러싸인 짙푸른 용소가 있으니 낮에는 운무가
감돌며 금방이라도 아홉 마리의 청룡이 여의주를 먹음고 승천하는 듯하는 승경이다. 이제는 지리산
관광도로가 개설되어 구룡계곡의 아카이웨일 불리우며, 이어진 계곡의 오름길 정령치를 넘고
반선과 노고단에 이르는 코스는 전국에서 으뜸가는 등반코스로 되어있다.
2).뱀사골의 옥류와 단풍
지리의 명산, 산 푸르고 물 맑은 계곡중에서 가장 길고 깊숙한 골짜기로, 장장 12㎞가된다. 옛날
산승과 큰뱀의 전설이 깃든 계곡이다. 이 계곡의 희고 맑은 계류는 옥수가 흐르는 듯하여 옥류라 하였다.
옥류따라 크고 작은 소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데 각 소마다 전설들이 있어 이 전설에 의한 각 소의
이름이 생겼다. 산자수명한 심산유곡, 봄에는 연분홍 진달래와 철쭉이 개화되고 여름에는 푸름이 쌓인
숲과 벽계수, 가을에는 불붙는 듯한 단풍의 만산홍록, 겨울에는 설화로 덮인 천봉만벽, 사계절을 두고
계속되는 이같은 경관은 뱀사골에서만이 만끽하는 아름다운 경치이다
3).광한추월
광한루는 달나라에 있는 월궁이다. 광한루원의 이름은 월궁광한청허지부(月宮廣寒淸虛之府)를 인용한
천상의 낙원을 본딴 이름이다. 지상에서는 이 고장에 광한루가 있다. 추월강산의 광한루원의 정경은
이 광한루의 높은 다락에 올라서 가을 달을 보고 시정을 노래할 때 그 주인공이 된다. 그 둘레에는
추월색에 젖은 심신산(영주·방장·봉래)이며 오작교를 바라보던 가히 지상의 선경이 바로 이곳이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4).만복대의 갈대와 백설
지리영봉에서 서남쪽으로 구릉을 타고 펼쳐진 평원의 갈대밭. 갈대는 높은산을 좋아하는 성질을 가졌다.
봄·여름의 푸른 초원이며, 가을이면 하늬바람을 맞으며 피어나는 희 솜털 같은 갈대꽃이 겨울의
설화인양 설원을 방불케 하고 겨울이면 백설의 평원을 이룬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구례읍이,
서북으로 남원시가 한눈에 보인다.
5).실상사의 아침과 3층석탑
명산에는 명사찰이 있다. 새벽의 고요속 산정을 울리는 스님의 목탁소리는 이곳 가람의 아침을 울린다.
멀리 산안개 자욱한 사찰의 원정이, 때마침 일출의 햇살이 비쳐올 때면 천년불심을 간직한 동서
삼층석탑이 드러나며 세속을 미소로 관조한다. 때마침 북으로 삼봉산의 높은 봉이 우뚝 솟고 남으론
지리의 연봉들이 운해에 감싸여 바다위의 큰 섬들처럼 나타난다.
6).반야봉의 낙조
불가에서 이름한 지혜로운 산봉우리. 여름의 태양이 서쪽으로 지평선에 접어들면 서쪽하늘엔 무지개빛
구름이 일며, 휘황찬란한 저녁 노을이 빛난다. 때마침, 황금빛 색상으로 고요속에 사라져가는 반야봉의
낙조는 인생무상의 업보(業報)를 슬기롭게 감싸주는 듯 장엄한 감동이 깃들인다.
7).세걸산에서 본 지리연봉
푸름이 쌓이고 쌓여 검푸른 세걸산 긴 여름의 더위를 피해 산기슭으로 올라간 양떼가 해맑은 아침
햇살을 받을 때, 저멀리 지리연맥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운무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가는 자연의
신비속에 우뚝한 산봉우리들은 한 폭의 한국화를 대표하는 듯하다.
8).교룡낙조
교룡산에 비추이는 석양풍경, 한 여름 뜨거운 해가 시라산방(대산면 풍악산)에 걸치면서 산의 하늘이
황금빛으로 물들면서 오색영롱한 구름바다를 이룬다. 이때면 교룡이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것
같은 경관을 볼 수 있다.
9).춘향과 이도령 고개
일명 박석고개, 성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이야기가 곳곳에 뿌려지고 새겨진 고개. 이 사랑의 고개길
봄이면 개나리 노오란 꽃향기 그윽한 산구비를 돌고 돌면, 버선발로 돌을 비빈 박석터, 이별을 나눈
오리정눈물 방죽이며, 버선밭등 우리 고전의 요람이다. 이 길을 걷는 많은 길손들, 고개 정상의 촌향각에
올라서서 춘흥을 달래는 추억의 고개 길이 되고 있다. 지금 이 길은 춘향로가 개설되면서 시민공원으로
조성되었다.
10).여원치의 석양
옛날 여인의 정절이 뿌려진 고개 길이며, 이성계 장군의 황산싸움을 도운 마고할미의 전설이 깃든
고갯길이다. 저녁 빛 물들이는 고갯마루 여원정에 올라서면 넓고 큰마음의 기상이 찾는다.
여기서 서쪽으로 남원시가가 보이고 동으로는 가까이 주지봉의 거암이 영겁의 풍우를 삼키고 우뚝
솟아 있다. 그 산줄기는 병풍처럼 둘렀으며, 푸른 산림과 서로 조화를 이루어 약산의 정경을
만끽하게 한다. 이때면 아흔 아홉 구비의 여원재 저녁노을은 밤을 기다린다.
특별히 특징은 없지만 이곳이 좋은 것은 맛있는 점심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ㅋㅋ
그러나 진솔이님이 함께 오신 +1(남재현)님과 정확한 위치를 모르고 알바를 한다고 전화를 주고 받는데,
일단 다른회원님들은 식사를 하시게 하고 진솔이님도 저도 다시 등로로 올라가 찾아봅니다만,
조금 시간이 지난 뒤 수풀을 지나 환한 얼굴에 이쁜 여자분이 나타나 시공 다들 한숨 돌립니다.
이야기인즉슨 +1님이 함께 오시던 분들을 보내고 진솔이님을 기다리셨다는데,
혼자서 양갱을 드시면서.ㅋㅋ
기다리는 시간이 좀 길어지니 혼자서 산행을 계속하셨던 거지요.
"아무래도 제 생각엔 아무도 안주려고 혼자 숨어서"....~~~ㅋㅋ
뭘~
양. 갱. . . . .ㅎ
암튼 다행입니다 사고없이 당도하셔서 함께 다시 여원재로 내려와 식사를 하는데,
이번엔 전화가 옵니다.
어라!, 풍산형님....?
사또야 나 어디에 있는거니~~~~ㅠㅠ
이런 가만히 살펴보니 이번엔 형님이 안보이십니다.
형님도 등로를 벗어나 알바를 하신 것이지요,
그래도 다행이 형님은 도로로 나와서 전화를 하신거여서 금방 여원재에 당도하시는데
너무 방가워요....ㅋㅋ
밥먹기 힘듭니다, 진짜루~~~~ㅋㅋㅋ
그나저나 형님이 오신는 동안에 회원님들은 거의 식사를 끝내고 형님은 제대로 식사도 편히
못하시니 마음이 많이 불편합니다만, 형님은 괜찮으시다고만 하시니...
참, 식사를 하면서 가만히 시간을 보니 생각보단 많이 흐른게 좀 거시키합니다.
너무 여유있게 산행을 했나?
ㅎㅎ....
하지만 앞으로 약 3시간 정도면 충분하니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는데 용아형님이 짐짓 걱정을
하시는데, 같이 걱정을 하는 척....ㅎㅎ
오후 일정을 위해서 다시금 출발을 합니다.
참 여원재휴게소는 라면이랑 식품을 팔면서도 화장실 인심은 매우 박합니다.
참고하셔야 할듯....
산행을 시작하고 얼마안되 민박집이 나타나는데 방갑습니다.
1기 대간때도 반대 방향으로 알바를 해서 내려올때 조금 수고스러웠는데 이곳에서
맛있는 뒷풀이 음식을 먹었던 기억이 솔솔~~~
주인장 아주머니의 막걸리 한잔 소릴 귓등으로 들으며 다시 진행을 합니다.
이 이후부터는 이정표가 제법 잘 정비되 있습니다.
특별히 어려움 없이 이정표대로 등로만 따라가면 되니 수월하나 역시나 계속되는 오름과 내림의
반복, 그렇게 임도를 지나고 등로를 넘어 주지사갈림길을 지나 두번의 조금 거시키한 비알을 넘어
산행을 계속하나 마치 양탄자를 깔아 놓은듯 등로는 푹신푹신 너무도 편안한 길을 지나고
입망치(笠望峙,545m, 스님이 삿갓을 쓰고 지나가는 모습을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
도착하고 약 20여분을 더 산행한 후 수정봉에 도착합니다.
수정봉.
수정봉(水晶峰 804.7m)은 남원 운봉읍, 주천면, 이백면의 경계를 이루는 백두대간 상의 한봉우리로 학이 날개를 펴고 날 듯한 형상을 하고 있으며 기암절벽이 장관을 이루는 수려한 산이다.
산 중턱에 수정이 생산되던 암벽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며, 특히 기암절벽이 장관을 이루고 섬진강
유역과 낙동강유역의 분수계가 되며 이백에서는 650m의 높은 산이 운봉읍 주촌리에서는 250m의
낮은 산이 된다. 입망치를 사이로 양지산성 남쪽에 위치한 수정봉은 운봉읍 주촌리와 이백면 과립리를
경계로 두개의 산봉우리를 포함하여 성의 평면 형태는 표주박 형태를 이룬다. 확인된 성의 길이는
150m 정도 된다. 성의 부대시설은 망대와 우물로 추정되는 웅덩이가 있었으며, 망대는 성의 중앙부와
서쪽에 원형의 형태로 남았고 동쪽 산봉우리의 남쪽 경사면에 위치한 우물지는 원형의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석재를 이용하여 우물시설을 마련한 것으로 추정된다. ---- 수정봉정상석 뒷면글.
또한 수정봉에서 이어지는 구룡계곡도(백두대간에서는 비켜있으나) 빼놓을 수 없는 장관이다.
남원 구룡계곡은 지리산의 품에 있지만 지리산의 능선과 직접 연결되지 않아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지리산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구룡계곡길을 일부 정비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이 길이
지리산둘레길 제1구간(주천~운봉)과 이어지면서 소위「구룡폭포 순환코스」가 새롭게 생겨났다.
구룡계곡은 서북능선의 만복대에서 흘러내린 계류와 수정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능선 계류가 모여
한데 어우러진 심산유곡이다. 원천폭포로도 불리는 구룡폭포는 구룡계곡 아홉 명소중 으뜸으로 폭포
자연미도 빼어나지만 동편제 소리꾼들의 성지로도 통한다. 송만갑, 박초월, 강도근 등 당대 최고의
명창들이 구룡폭포의 웅장한 소리에 맞서 소리를 다듬어 냈다고 전한다.
구룡구곡은 1곡 송력동폭포, 2곡 육모정 앞의 용소, 3곡 학서암, 4곡 구시소(서암), 5곡 유선대,
6곡 지주대, 7곡 비폭동, 8곡은 경천벽, 9곡은 구룡폭포이다.
1곡 송력동폭포는 구룡분소 옆 육모정 관찰로에 위치하며,
2곡 용소는 육모정 앞에 보이는 소(沼)로 불영추라고도 한다.
3곡 학서암은 학들이 고기를 잡아먹는 형상으로 삼곡교 옆에 위치한다.
4곡 구시소는 물살에 패인 바위 모양이 소나 말의 먹이통인 구시처럼 생겼다하여 붙인 이름이며,
서암은 거대한 바위가 물 가운데 우뚝 솟아있고 건너편의 작은 바위는 중이 끓어 앉아 독경하는
모습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5곡 유선대는 계곡에 거대한 너럭바위들이 펼쳐져 있는데 바위에 금이 그어져 있어 선인들이
여기에서 바둑을 즐겼다고 한다.
6곡 지주대는 크고 작은 폭포, 그리고 소와 담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고 작은 기암이
하늘을 떠받칠 기세로 솟아있다.
7곡 비폭동은 반월봉에서 흘러내린 물이 아름다운 물보라를 그리며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그려낸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그러나 비폭동은 평소 수량이 풍부하지 않아 비가 온 후에 보아야 제맛이라고 한다.
8곡 경천벽은 거대한 암석층이 계곡을 가로질러 물 가운데 있어 붙여졌으며, 비폭동에서 급경사를
오르는데 계곡이 워낙 험하여 길을 산으로 돌린 탓에 볼 수가 없다.
9곡 남원 8경중 제 1경으로 꼽히는 구룡폭포 교룡담은 두 마리 용이 서로 꿈틀거리는 형상을 한
모양으로 약15m에서 떨어진 폭포가 구룡담에서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하단으로 소용돌이치며
미끄러져 내려간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폭포로 빨려들어 갈 것 같은 느낌이 들며 호연지기가
느껴지는 폭포의 장쾌한 모습이다. 4월초파일이면 아홉마리의 용이 하늘에서 내려와 아홉군데 폭포에
한곳씩 자리를 잡아 노닐다가 다시 승천했다는데서 유래되었다.
선두로 가셨던 분들과 함께 오랜시간 휴식을 취하며 후미를 기다리는데 아무리 날씨가 좋다고
해도 한참을 쉬니 한기가 느껴집니다.
후미가 오신 것을 기다려 잠시 있다가 다시 선두는 출발을 합니다.
이후로도 계속되는 산행은 작은 봉우리를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며 순탄한 등로에 진한
소나무 향기를 맡으며 정말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마음껏 느끼며 날머리인 노치마을에
들어서는데, 제일 먼저 당산나무가 일행을 방겨줍니다.
네그루의 소나무인데 어찌나 크고 멋진지 참 대단합니다....ㅎ
한덩치하는 소금님이 팔을 벌려 안아도 감당이 안됩니다.
이정도라면 도대체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을지 상상도 안되는데,
저는 마지막 소나무향의 아쉬움을 달래고 마을로 들어서 노치샘에 당도합니다만
노치샘은 답사를 왔을때와 똑같이 말라서 보기에 좀 민망합니다.
그래도 즐거운 꽃순이님을 모시고 대간 안내석과 마을회관에 들러 기념이 될만한 인증샷을
찍고 마지막 목적지인 노치마을 안내석을 향해서 진군합니다.
약 500m정도 도로를 이동해서 오늘에 마지막 목적지인 노치마을 입구에 당도하고
이로서 오늘에 산행이 모두 마무리됩니다.
뒷풀이 음식으로 가져온 과메기와 개별적으로 가져오신 삼겹살을 궈 먹으며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데 마을 아주머니도 오셔서 함께 하시고 즐거운 시간을 끝으로 편안히 집으로
출발을 합니다.
이번 산행은 예상했던대로 편안하고 즐거운 산행이 되었습니다.
일부에서는 대간길이 아니면 그닥 오시지 않는 길이라고 말씀을 하시지만 저는 정반대입니다.
이처럼 편안한 길에 시작부터 끝까지 진한 소나무 향기에 취해서 산행을 할 수 있으니 정말 좋고
거기에 고남산에서의 풍광은 멋진 지리산 능선을 조망할 수 있으니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모든 분들께 강력히 추천하는 바입니다....ㅋㅋㅋ
이번에도 함께 해주신 회원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습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다음번 산행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새벽녘 길을 나서는데 길은 온통 안개로 자욱합니다. 고속도로도 사정은 매일반입니다. 평상시라면 모두 일어나셨겠지만 지금은 새벽 일찍 나오시느라 불편하지만 부족한 잠을 청해봅니다. 그런데 잠 안자고 웃고 있는 분은 누군겨?....ㅋ 오늘따라 산들바람형님이 잠을 못 잠미당. 뒤는 무지 덥다나? 구란데 형님은 맨날 뒷자석인디....ㅋ 아침 매식을 위해서 들린 휴게소. 역시나 안개 자욱.함께한 사진들
....^^*
유치삼거리 입구.
들머리인 유치삼거리 입구에 도착하고 한창 수확중인 무를
한가득 담아 놓았습니다.
한창 산행 준비중인 회원님들.
좌측이 매요리로 가는 길입니다.
밭에도 온통 무를 담아 놓은 마대로 가득합니다.
수확한 무 옆으로 붉은 단풍나무 한 그루가 멋지게 환영을 합니다.
아무래도 오늘 멋진 산행이 기다리고 있을것 같습니다....ㅋ
하늘도 높고 푸른것이 새벽 안개는 일찌감치 사라지고
멋진 조망도 기대됩니다.
종주녀들 모임임다.
일반산행은 시시하다나....ㅋ
코옹쥐님과, 하랑님.
이 사진은 특별히 푸른소금님의 부탁으로 찍었습니다.
소금님의 거시키 교가에 모악산이 나온답니다.
구래서 모악산 식품이라도 한장....ㅎ
단풍을 배경으로 둥그라미형님.
푸른 상의가 하늘과 잘 어울리네요,
즐거운 산행이 되세요....^^
매요마을 입구에 무밭.
짠지용 무라서 무청은 안쓰고 저렇게 선 작업을 해 놓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옛날 생각하며 한개 뽑아 먹을걸....ㅋ
매요휴게실임다.
할머니께선 막걸리조차 차로 실어 나른다고 싫어하십니다....ㅠ
보통 매요마을서 산행을 시작하면 출발점이 되는 마을회관.
마을까지 들어오는 버스.
단체 사진으로 일단 시작을 하고,
구런데 플랜카드가 엄써요....ㅠ
힘차게 화이팅도 외치고,
우리산악회~~ 화이팅~~~~~~~~!!!!
무주상형님이 힘차게 발길을 내딛습니다.
너무 쉬운겨~~~~ㅋ
등로로 들어가는 첫 안내판.
한창 공사중인 도로.
정확하진 않은데 고기리에서 운봉까지 연장 도로인것 같습니다.
저희를 태운 버스는 저 공사중인 다리 밑 도로로 왔습니당....ㅎ
좁아서리 김승진형님도 좀 긴장했습미당.
멀리 고남산 안테나가 보이네요.
구람 다 온거죠?
낙엽이 잘 깔아논 카페트 같아요.
발걸음도 가볍게 오이선배님께서 걸어 가십니다.
조그만 봉우리도 몇 개 넘어가고....
소금님도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안부에 내려서서 잠시 쉬어갑니다.
모두 소풍나온 어린아이 같습니다....ㅋ
너무 좋아하시나~~
등로에 거의 대부분 이런 소나무 숲입니다.
정말 향기가 진하게 느껴지는게 좋습니다.
바람도 잠잠하고 가끔 새소리에 등로는 나뭇잎으로 푹신하고,
따뜻한 날씨에 하늘은 화창하고 더 이상 좋을 순 없습니다.
잠시 산행중 선두로 가시는 네분을 한장.
고남산을 오르기 직전 도로입니다.
안테나기지 유지보수용.
다시 등로에서 급경사를 조금 오릅니다.
에고~~~
힘든데 언제 오르나....ㅋㅋ
땅 바닥만 쳐다 보고 열심히~~~
안테나 기지까정 다 올라왔네요.
멋진 하늘과 지리산을 조망하며.
코옹쥐님.
이젠 시시한 산행은 관두고, 종주녀로 새롭게 태어 나고 있습니다.
사알짝 무서버~~~~ㅋㅋㅋ
대단하지요, 저 조그만 체구에서....ㅎ
노찌님도 오늘 기대가 큼니다.
노찌가 노치마을에 가니....ㅋ
이참에 노찌든 노치든 하나로 통일을....ㅎ
오키짱누님, 꽁지각시누님, 택군까정.
멋진 조망과 풍광을 배경으로....
조금 땀내고 왔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지요?
대나무님과 황악산님, 오이님.
한방에 인증샷.
안테나 기지는 정상이 아닙니다.
정상으로 가는 등로 입구.
안테나 기지에서 도로를 따라서 살짝 내려와야 함다.
이참에 잠시 쉬어갑니다.
물도 한모금 마시고,
후사면이라 등로엔 서리가 잔뜩입니다.
살짝 헬기장을 지나고,
황악산선배님께서는 도인같습니다.
가좌부를 틀고 수행정진중인....ㅋㅋ
반갑습니다....^^*
고남산에 올라서 인증샷 한장.
현술이형님.
늘 배려심 깊게 행동하시는 멋진 형님임다.....ㅎ
얼마전 진부령에서 대간 종주를 모두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서신 오이선배님.
좋은 모습 후배들께 많이 보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모두모두 화이팅....!
진솔이님.
산악회에서도 좋은 공지로 열심히 뛰어 다니는데,
오늘도 화이팅임다....ㅋ
처음 대간에 오신 진솔이 +1(남재현)님.
노란 병아리가 봄 나들이 나온 것 같아요....ㅋ
구래도 산행은 엄청 잘 하시드라고요.
피아님.
오늘은 가벼운 복장으로 고남산을 지대로 즐기고 계십니다.
이쁜 모습 자주 뵙고요, 대간에 대한 열정도 좋은신데
이참에 종주녀로 새롭게~~~~ㅋㅋㅋ
부르토님.
오늘도 중간에서 회원님들을 잘 챙기며 고생하십니다.
멋진 모습 고마워요.
대나무형님.
요즘 새로운 사업때문에 고민이 하나 더 늘으셨는데,
잘 되시길 기원합니다....!!
모두 아래 정상석에서 사진 찍기에 정신이 없는데,
두분은 지리산 능선을 따라 향학열에 한창이십니다.
....^^*
,
다같이 정상석에서 으랏찻차~ 홧팅~~~~~!!!
뭐시여, 총 24명이 되어야 하는데 한명을 어디로 간 것이여?....ㅋ
고남산 정상석.
운해에 섬들이 늘어나고 저희도 내려갈땐 배를 타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이번엔 GPS로 열공중이신 고야형님.
정상석 후면, 고남산이 큼지막하게 나와있네요.
안테나 기지를 돌아보고,
정상에서 돌아 본 지리산 조망.
가운데 젤 뒤로 천왕봉.
바래봉이 보이시나요?
앞으로 가야 할 대간 마루금, 멀리 작살봉이 보이고.
산불감시초소에 근무중인 감시원 아저씨와 한장.
다행이도 단속은 안 하시고 좋은 말씀만 감사합니다....ㅋ
정상 삼각점.
하산 길에서 두분이 함께,
사진이 너무 밝아서 운해와 산이 잘 안나오네요.
아쉽습니다....ㅠ
무자게 위험한 암릉 로프지대임다.
그 위험한 곳에서도 사진을 찍는 꽁지각시누님.
모험이 일상생활 입니다....ㅋㅋ
푹신푹신 카페트를 깔아 놓으듯 편안한 산행길.
멀리 장교리마을이 보이고,
때를 잊으신 개굴님입니다.
이러다 동사하는건 아닌지....ㅠ
이쪽 대간길이 그렇듯 이곳도 마을과 인접해 있어서 무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따뜻한 햇살과 함께여서 인지 왠지 편안해 보입니다...ㅎ
중간 등로가 마을 길과 연결도 되고,
너무 좋은 날씨때문에 한가한 안내판도 잠시 짬을 내 낮잠을 잡니다.
^^*....
요기서부터 여원재까지 알바하기 좋습니다.
길들이 마을길과 합쳐져 산행로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초행자는....
하지만 그닥 헤맨것은 아니고....ㅎㅎ
이제 여원재도 다왔고 맛있는 식사 생각에 저절로 흥이 납니다....ㅋ
멀리 고남산이 보이는데 까치밥과 함께 고즈넉한 시골 마을이 잘 어울려
보기 좋습니다.
요 길에서 앞쪽으로 가시면 농로를 따라서 진행합니다(잠시 알바^^).
그 길도 합류가 되닌 괘안하지만 이 뒤로 길을 따라서 마을을 통과하면
역시 여원재로 가실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다시 산행로로,
장동마을 옆으로 멀리 후미에 모습이 보이고,
여원재에 당도하고,
여원재안내판.
여원재 유래 안내판.
고야형님과 대나무형님이 사이 좋게 내려오시네요.
수정봉쪽 여원재 들머리.
동학혁명 안내석.
운성(봉)대장군.
雲城大將軍(운성대장군)이 우뚝 서 있고 뒷면에 새겨진 글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운봉의 문화유적 / 운봉은 신라 거문고의 명인 옥보고가 은거하면서 거문고를 전수시킨 이래 판소리
동편재의 고장으로써 가왕 송홍록, 국창 송만갑, 인간문화재 박초월, 낙화의 명인 박항규 등이 터를
이룬 고장으로 많은 문화유적과 민속사료들이 산재해 있어 민속문화의 보고라 불리운다. 주요문화재로는 황산대첩비지, 서천리 당산, 운봉향교, 행정리 고분, 여원치 마애불, 동학토벌비 등이 있고,
고성으로 고남산성, 장교리 합민성, 춘향산성, 수정산성, 노치산성, 정령치 순라도가 있다.
또 명승과 고적으로 옥계동과 피바위, 면왕목장, 정령치 등이 있으며, 서천리 장승, 북천리 장승,
권포리 장승, 임리 당산 등 많은 민속자료와 황산대첩제, 운봉줄싸움, 목기와 유기 낙곡공예 등은
옛부터 운봉의 특산품으로 알려져 왔다.
도로 옆 주차장에 자리를 펴고 맛있는 점심식사에 정신 없습니다.
혼자서 알바를 하고도 씩씩하게 웃으며 오시는 남재현님.
혹여 무섭다고 울지나 않을까 염려했는데,
무쇠주먹을 불끈 쥐고 당당히 나타났네요....ㅋ
굳세어라 금순이쯤될까?.^^
여원재 인증샷은 남겨야 아니되겠습니까?.
정류장이 아닌대도 정차를 하시는 버스기사님.
오히려 저희가 아니라고 말씀을 드렸네요....ㅋㅋ
친절하십니다.
마을 입구에 버스정류소.
마지막 알바생, 풍산형님.
많은 인원에 함께 있다보니 일일이 확인을 못했네요, 죄송하게도....
그래도 잘 찾아서 합류하셔서 다행입니다만, 식사를 제대로 못하셔서
미안한 마음입니다.
여원재에 새로 생긴 휴게소.
그러나 화장실 인심은 매우 박합니다.
물건을 살땐 거시키하더만....
식사를 끝내고 오후 산행에 들어서서 처음 만난 민박집.
1기대간때는 이곳에서 뒷풀이를 만나게 먹었던 집인데....
여사장님의 막걸리 한잔소리가 걸지는데 아쉽습니다....ㅋㅋ
여원재를 기준으로 고남산쪽은 이정표가 없는데 수정봉 방향은 이렇게
잘 정비되 있습니다.
안심하고 등로만 따라 가시면 수정봉을 지나 노치마을로 가시게 됩니다.
주지사갈림길 안내판.
역시나 이곳도 육산의 편안한 등로이지만 요긴 돌계단임다.
쭈욱~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는 등로.
오히려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습니다.
향기로운 나무 냄새에 상쾌한 새소리.
아쉬운 점이라면 잠시라도 앉아서 그 기운을 느끼고 갔으면 하는 마음.
(^_^)...
입망치안내판.
입망치라 이름은 참 요상합니다만 뜻은....ㅋ
우거진 소나무 숲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등로가 이러하지요.
드디어 마지막 봉우리, 수정봉정상석임다.
오늘은 두번 다 현술이형님이 일등임다....ㅋ
용아형님.
성삼재에서 이곳을 넘어 여원재까지 산행을 마치고 다시 여원재에서 이곳을 넘어
노치마을까지 산행을 합니다.
정말 대단한 체력의 소유자임다....ㅋㅋ
이네아빠형님.
늘 형님표 활짝 웃는모습이 너무 좋은데,
오늘도 시종일관 웃는 모습이십니다....ㅎㅎㅎ
그러나 대간에선 얼마 안남았네요....ㅠ
그러니 3기를 쭈욱 이어가셔야 될듯....ㅋㅋㅋ
오키짱왕총무님.
대간 사랑은 아마도 이분 따라갈 분이 또 있을까 생각됩니다.
아~~~
한분은 적어도 더 있습니다.
부뜰이형님....ㅋㅋㅋ
요근래 더 긴 종주를 선호하는 덕에 쪼매 뜸했던 택군님.
자주 놀러와요~~~~ㅋㅋ
토끼띠 갑장 맞습니까?
세분....ㅋ
수정봉정상석 후면.
수정봉안내판.
잠시 휴식의 시간을 가지며,
이쁜이들 틈에 풍산형님이 쏘~~옥~~~~!!
다 이쁜건 맞는거지요?
^^*
저도 두 미녀옆에서 찡겨서리 한장....ㅋ
이 사진은 집안 가보로다가 설라무네 남겨야 되지 않을까....ㅎ
영원한 질주본능 용아형님과 함께....
그 외에 질주본능들....ㅋ
다정한 황악산선배님과 옴파로스누님의 모습.
모두들 왕형님의 모습처럼 다정하게 건강하게 산행을 하고 싶어하는데,
어떨지 모르겠네요....ㅋ
아무튼 좋은 본보기입니다.
오랜만에 대간에 와서 전회차에는 좀 고생을 했는데 이번엔
잘 즐기고 있나요?
하랑님...^^
이런 길을 하루종일 걷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로 기분이 좋아지고 상쾌해 질것입니다....ㅎ
연산골갈림길 안내판.
무주상자문위원님.
형님덕분에 제가 큰 힘이 됩니다....ㅋ
구나저나 바위가 꼭 고인돌 같습니다.
일명 고인돌바위.
실제로 고인돌은 아닌것 같습니다.
길가에 이렇게 위험하게 놓을순 없겠지요.
보통의 고인돌이 평지나 정상등 평평한 곳에 대부분 설치하니....
청명한 하늘에 솔향이 그윽하게 퍼지는 것만 같습니다.
노치마을도 이제 얼마 안 남았습니다.
소나무 숲.
노치마을 당산나무.
소금님이 고목나무에 매미처럼 붙어있네요.
정말 마을에 영검한 나무라, 믿음이 가네요.
처음 저 나무를 봤을 땐 그리 큰지도 모르고 지나는데,
분명 그 때도 이 나무 아래서 잠시 쉬어 갔었는데...ㅠ
노치마을의 풍경.
푸른 대나무 길로 보이는 모습이 멋집니다.
노치샘안내판에서.
말라버린 노치샘.
누가 이 사람을 아시나요?
꽃순이는 맞는데~ㅋ
목돌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엄청 아픈 기억에 현장입니다만,
이곳도 기념 사진 한장.
피아님이 산들바람님과 함께.
안내석 앞에서.
마을 입구에 대간안내석과 안내글.
국화가 가을을 대표해서 멋지고 아름답게 인사를 건네는듯 합니다.
노치마을 초입에 쉼터 안내그림.
집을 배경으로 멋지게 그려 놓았습니다.
카우보이형님이 함께 조화를 이뤄 멋지네요.
오늘도 넉넉한 마음으로 삼겹살을 한 보따리 가져오셨네요.
덕분에 모두 맛있게 드셨는데, 단점은 과메기가 남았다는거....ㅋㅋㅋ
고야형님.
오늘도 형님 덕분에 즐겁고 좋은 이야기 많이 들었네요.
개인적인 생각엔 형님이 대장을 함 하시면 어떨지....ㅋ
괘안할 것 같은데~~^^
마을입구에 노치마을 그림(요건 안쪽 쉼터에서 그린 것)
지리산 둘레길 안내판.
노치마을로 들어오는 버스정류장.
멀리 지리산 자락이 보일듯....ㅋ
산들바람형님.
늘 밝은 얼굴로 웃음을 주시는 바람형님 덕에 산행길이 편안했네요.
그래도 멋진 잰틀맨이라 혼자서 화장실서 세수도 하시공,
어째 얼굴에서 광이 좀 나나요?..........ㅋㅋㅋ
노치마을 입구 안내석.
피아님.
첨엔 보기에 연약해 보여서 산행을 하실까? 했는데,
멋지게 완주를 하셨습니다.
끝까지 함께 마무리 했으면 좋겠네요....ㅋ
누님 화이팅~~~~!!
어느덧 해가 서산에 지고,
이젠 집에 가야 할 시간입니다.
마지막으로 진솔이님과 남재현님.
끝까지 잘 마무리 하셨네요.
개인적으로 남재현님은 대간에 딱인것 같습니다.
산행도 수준급이고 알바를 해도 배짱 좋게 웃을 여력이 있고,
꼭 다음에도 뵙기를 기대합니다....^^*
비록
먼저 내려오고 늦게 내려오는,
시간의 차이야 있겠지만
스스로가 꿈꾸고, 바라는 목표대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간다면
좀 늦던 빠르던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스스로 행복하다
생각하지 못한다면,
세상
어느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
오늘도 행복한 날을 꿈꾸며....
감사합니다....^^*
게으름뱅이 사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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