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과 시
이정자님 시 모음
byun4do
2013. 5. 16. 08:35
비가 悲歌
누가
등 뒤에서 오래도록 울다 갔는가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두드리다 지쳐 돌아갔는가
새까맣게 타버린 숯검정 가슴이 되어 보고서야
울다 돌아선 그대 가슴 어루만져 보는 날
세상 모든 슬픔은 다 내게로 와
라일락 꽃향기조차도 못이 되어
아프게 와 박히는 날
누가 얼음덩이의 서늘한 가슴을
홀로 어루만지다 돌아갔는가
등 뒤에 우는 사랑아
*첫시집<능소화 감옥>수록
구절초 엽서
먼 산 가까워지고 산구절초 피었습니다
지상의 꽃 피우던 나무는 제 열매를 맺는데
맺을 것 없는 사랑은 속절없습니다
가을 햇살은 단풍을 물들이고 단풍은 사람을 물들이는데
무엇 하나 붉게 물들여보지도 못한 생이 저물어 갑니다
쓸쓸하고 또 쓸쓸하여
찻물을 올려놓고 먼 산 바라기를 합니다
그대도 잘 있느냐고,
이 가을 잘 견디고 있느냐고
구절초 꽃잎에 부치지 못할 마음의 엽서 다시 씁니다
*첫 시집『능소화 감옥』수록